캐리사랑교회ㅣCary Sarang Church https://www.carysarang.org Cary, NC, Raleigh NC, North Carolina, Apex, Holly Springs, Chapel Hill, Durham Tue, 25 Nov 2025 15:31:06 +0000 en-US hourly 1 https://wordpress.org/?v=6.8.3 https://www.carysarang.org/wp-content/uploads/2022/03/cropped-output-onlinepngtools-1-32x32.png 캐리사랑교회ㅣCary Sarang Church https://www.carysarang.org 32 32 198629261 [묵상]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ㅣ [Devotional]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c%97%ac%ed%98%b8%ec%99%80%ec%9d%98-%ec%84%a0%ed%95%98%ec%8b%ac%ec%9d%84-%eb%a7%9b%eb%b3%b4%eb%8b%a4-%ec%95%8c%ec%a7%80%ec%96%b4%eb%8b%a4-%e3%85%a3-devotiaonl-taste-and-see-th/ Tue, 25 Nov 2025 15:09:49 +0000 https://www.carysarang.org/?p=7161

시편 34:8–9 (개역개정)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직역, “직접 입으로 맛보고 눈으로 바라 보아라”]. 그에게 피하는 자[=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두려워]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다윗은 이 두 구절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지식적으로 알 뿐 아니라, 직접 “입으로 맛보고, 눈으로 바라보라”고 초청합니다. 이 초청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몸의 오감을 통해 깊이 경험하라는 명령입니다. 다윗은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멀리 떨어져서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믿으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가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아름다운 장관을 바라보며 경탄하듯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기쁘게 경험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영원히 불변하는 실체적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렇게 맛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게 되며, 이 신뢰는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은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무거운 짐 그리고 필요를 주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신뢰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우리를 맡기고, 그분의 성품을 의지하며, 그분의 돌보심 아래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행복과 깊은 안식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피난처 안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그 어떤 것 보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진심으로 이렇게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제가 달려가 의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고 위대하십니다!” 신뢰는 경배가 되며, 이 경배가 우리로 하여금 기쁨으로 경외의 순종을 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이 말은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윗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의 모든 필요를 친히 책임져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속한 자들에게 선한 것을 주시는 데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로마서 8:32)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심으로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이 한 주,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바라보는 은혜를 누리길 바랍니다. 주님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고, 우리 삶에서 가장 귀하신 분으로 인정합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어떤 부족함도 없게 하신다는 진리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Psalm 34:8–9 (ESV) Oh,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 Oh, fear the LORD, you his saints, for those who fear him have no lack!

David with these two verses invitesh us not simply to know that God is good, but to taste with our mouth and see it with our eyes. He is calling us to experience God’s goodness with the full engagement of our hearts and senses, the way we would savor a rich meal or marvel at a beautiful scene. The goodness of God is not an abstract idea but a reality that never changes eternally.

This tasting leads to trust, and trust leads to blessedness. To take refuge in God is to entrust our fears, burdens, and needs to Him. It is to come under His protection, depend on His character, and rest in His care. The person who does this is called “blessed” because true happiness and deep well-being are found only in the shelter of God’s goodness.

This trust naturally matures into reverential fear. To fear the Lord is to treasure Him above every competing desire or security, saying in the heart, “God, You are better than anything I could run to.” Trust grows into worship, and worship grows into joyful obedience.

And here is the promise God gives us: “Those who fear him have no lack.” This does not mean that our lives will be free from hardship. We know well that David himself went through many trials. But it does mean that God personally takes responsibility for meeting every need of those who treasure Him. God is not reluctant to give good things to those who belong to Him.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how will he not also with him graciously give us all things?” (Romans 8:32). God has already gave us Himself in the sacrifice of His one and only Son.

As we celebrate Thanksgiving, may we taste and see the goodness of our God. Let us take refuge in Him and acknowledge Him as the most precious One in our lives. When we do, we will rest in the truth that His goodness is sufficient to make sure we lack no good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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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악인이 형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l [Devotional] Why the Wicked Prosper?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c%95%85%ec%9d%b8%ec%9d%b4-%ed%98%95%ed%86%b5%ed%95%98%eb%8a%94-%ec%9d%b4%ec%9c%a0%eb%8a%94-%eb%ac%b4%ec%97%87%ec%9d%b8%ea%b0%80-l-devotional-why-the-wicked-prosper/ Thu, 20 Nov 2025 15:43:11 +0000 https://www.carysarang.org/?p=7142

예레미야 12:1–3 (새번역) 주님, 제가 주님과 변론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공정성 문제 [=불평] 한 가지를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 2 주님께서 그들을, 나무를 심듯이 심으셨으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열매도 맺으나, 말로만 주님과 가까울 뿐, 속으로는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3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주님은 저의 속을 들여다보시고, 저의 마음이 주님과 함께 있음을 감찰[=시험]하여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도살할 양처럼 끌어내시고, 죽일 날을 정하셔서 따로 갈라내 두십시오.

예레미야는 모든 신자가 결국 하나님께 묻게 되는 질문을 꺼내 놓습니다. “주님, 왜 악한 사람들이 잘 됩니까?” 그는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오히려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이 형통하며, 심지어 입으로는 하나님과 가깝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위선자들이 잘 나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런 현실은 의인의 마음을 흔들고, 때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마저 의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의문과 불만을 품은 채 하나님께 나아가면서도 “주님이 옳으십니다”라고 먼저 고백합니다. 참된 믿음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선하시고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은 하나님의 직무유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연단하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하시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진리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저의 속을 들여다보시고, 저의 마음이 주님과 함께 있음을 감찰[=시험]하여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 앞에서 악인이 번성할 때, 우리의 믿음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바뀌는 우리의 환경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정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악인의 형통이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순간들은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본인”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 주시는 “복들”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밝히 드러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악인의 형통이 오직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한동안 번성하도록 허락하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악을 못 본 척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들을 도살할 양처럼 끌어내십시오”라고 기도하며, 회개하지 않는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성경은 악인들은 빠르게 성공하는 만큼, 아주 빠르게 파멸될 것이라는 진리를 반복해서 선포합니다.

시편 1:6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시편 37:1–2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시편 73:18–19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이 진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려고 애쓰는 신자들이 번성하지 못하는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쉽게 성공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형통을 잠시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를 낙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성공을 우리의 눈앞에 두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고, 우리가 매 순간 바뀌는 상황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시험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악인들의 성공 앞에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인의 번영은 잠깐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세워 가시는 믿음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보시며, 우리의 중심을 아시고, 우리의 마음이 어려운 시기마저도 우리를 더 깊은 신뢰와 흔들리지 않는 순종의 자리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도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악인들의 형통 조차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단련하시고, 우리를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Jeremiah 12:1–3 (ESV) Righteous are you, O Lord, when I complain to you; yet I would plead my case before you. Why does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 Why do all who are treacherous thrive? 2 You plant them, and they take root; they grow and produce fruit; you are near in their mouth and far from their heart. 3 But you, O Lord, know me; you see me, and test my heart toward you. Pull them out like sheep for the slaughter, and set them apart for the day of slaughter.

Jeremiah voices a question every believer eventually brings to God: “Why do the wicked prosper?” He sees ungodly people taking root, thriving, and even speaking God’s name while their hearts remain far from Him. Their success is so visible and so troubling that it tempts the righteous to doubt God’s justice.

Yet Jeremiah responds with remarkable faith. He brings his complaint directly to God, and begins with the confession, “Righteous are You, O Lord.” Even when he cannot understand God’s ways, he refuses to question God’s character. This is the heart of true faith.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is not a sign of God’s neglect; it is often the very situation God uses to test and purify the hearts of His people.

Jeremiah acknowledges this when he says, “You see me, and test my heart toward You.” God uses seasons of confusion—especially when evil appears to flourish—to reveal what we truly trust. Will we cling to God even when circumstances feel unfair? Will we rest in His righteousness when life seems upside-down? Such moments expose whether our faith is grounded in God Himself or in the blessings we hope He will give.

But Jeremiah also reminds us that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is temporary. God may allow them to flourish for a season, but He is not blind to their deeds. Jeremiah prays, “Pull them out like sheep for the slaughter,” acknowledging the coming day when God will judge every unrepentant heart. Scripture consistently affirms this truth: evildoers may rise quickly, but they fall just as quickly under God’s judgment.

Psalm 1:6 for the Lord knows the way of the righteous, but the way of the wicked will perish.

Psalm 37:1–2 Fret not yourself because of evildoers; be not envious of wrongdoers! For they will soon fade like the grass and wither like the green herb.

Psalm 73:18–19 Truly you set them [=the wiccked] in slippery places; you make them fall to ruin. How they are destroyed in a moment, swept away utterly by terrors!

So what does this mean for us today?

When we see ungodly people rise in influence or comfort while we struggle in obedience, our hearts are tempted to question God’s fairness. Yet Scripture shows that God Himself allows the wicked to prosper for a time, not to discourage us, but to reveal the true nature of our faith. He places their success before our eyes as a refining fire. Will we trust His character more than our circumstances? Will we cling to His promises when the world seems upside down?

And this is why we must not lose heart.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is fleeting, but the faith God is forming in you will last forever. He sees your struggle, knows your heart, and is using even this season to draw you deeper into trust and steadfast obed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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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예레미야가 선포한 복음 l [Devotional] The Gospel Jeremiah Preached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c%98%88%eb%a0%88%eb%af%b8%ec%95%bc%ea%b0%80-%ec%84%a0%ed%8f%ac%ed%95%9c-%eb%b3%b5%ec%9d%8c-l-devotional-the-gospel-jeremiah-preached/ Tue, 18 Nov 2025 14:22:08 +0000 https://www.carysarang.org/?p=7132

예레미야 10:6–7, 10 (새번역) 주님, 주님과 같으신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위대하시며, 주님의 이름은 능력과 위엄으로 충만합니다.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온 나라의 왕이신 주님? 주님은 마땅히 경외를 받으셔야 합니다. 세계 모든 지혜자들 가운데에도, 모든 나라의 권세자들 가운데에도 주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 그러나 오직 주님만이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주님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영원한 임금이십니다. 주님이 진노하시면 땅이 크게 진동하고, 그 분노를 온 세상의 민족들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생각할 때, 먼저 죄 사함,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복 등과 같은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주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복음을 하나님 중심적 관점에서 선포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먼저 우리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밝히는 소식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복음은 언제나 “주님께서 통치하신다”라는 진리로 시작됩니다.

예레미야 시대, 남아 있던 하나님의 백성(remnant)은 바빌론 포로기라는 그림자 아래에서 민족적 수치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가 전한 복음은 이스라엘이 곧 힘과 명예를 되찾을 것이라는 정치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정치상황을 뛰어넘는 영원한 복음의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참되신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 어떤 사람도, 어떤 제국도, 어떤 우상도 하나님의 왕권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세상과 자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는 이스라엘의 포로기 한가운데에서도 변함없이 유효했습니다.

이사야 또한 동일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좋은 소식[=복음]을 들고 산을 넘어오는 그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도다” (이사야 52:7) 이사야가 죄 사함과 속죄의 복음(이사야 53장)도 선포했지만, 그 전에 복음의 핵심주제인 하나님의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통치를 선포했습니다 (이사야 52장).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모든 구원이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진리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 이르러도 복음의 중심은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시며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 (마가복음 1:15).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받았다” (마태복음 28:18). 그리고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약속하신 메시아 왕)”로 세우셨다고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2:36). 따라서 신약의 복음 선포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온 우주의 주권자, 왕으로 다스리고 계신다!“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복음의 완성을 묘사하면서 예수님을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소개합니다 (요한계시록 19:16). 이로인해, 1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변함없는 고백은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진리를 기억하면서, 세상이 소란스럽고, 민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이 미움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정 안정 위에 세워진 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 흔들리지 않는 선언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통치하는 왕이시다.” 그리고 이 진리가 모든 인류의 눈 앞에 실현 될 날이 매일 매일 한걸음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 앞에 꿇고,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빌립보서 2:10–11).

우리 모두 그 날을 소망하며 담대함과 기쁨으로 오늘을 살아갑시다. 이것은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왕이신 메시아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며 여전히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Jeremiah 10:6–7, 10 (ESV) There is none like You, O Lord; You are great, and Your name is great in might. Who would not fear You, O King of the nations? For this is Your due; for among all the wise ones of the nations and in all their kingdoms there is none like You. … But the Lord is the true God; He is the living God and the everlasting King. At His wrath the earth quakes, and the nations cannot endure His indignation.

When many people think about the gospel, they begin with themselves—their forgiveness, their eternal life, their blessings. But Scripture proclaims the gospel first from a God-centered perspective. The good news is not primarily about who we are, but about who God is. From Genesis to Revelation, the gospel begins with this reality: the Lord reigns.

In Jeremiah’s day, the remnant of God’s people lived under the shadow of exile, surrounded by the military glory of Babylon and the humiliation of national collapse. Yet the gospel in Jeremiah was not that Israel would soon regain power or prestige. The gospel was this unshakable truth: “The Lord is the true God; He is the living God and the everlasting King.” No empire, no idol, and no human ruler could ever dethrone Him. God’s reign was never in question.

This same gospel shines through Isaiah 52:7: “How beautiful up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of him who brings good news[=the gospel]… who says to Zion, ‘Your God reigns.’” The good news announced by Isaiah is not first the forgiveness of sins (Isaiah 53)—though that is gloriously true—but the proclamation that “God reigns” (Isaiah 52). All salvation flows from this reality that God powerfully reigns above all.

When we arrive at the New Testament, the message remains the same. Jesus begins His ministry with a royal announcement: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Mark 1:15). After His resurrection, He declares,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 has been given to Me” (Matthew 28:18). And Peter proclaims at Pentecost that God has “made Him both Lord and Christ (=the promised Messianic King)” (Acts 2:36). The gospel is the announcement that the crucified and risen Jesus now reigns as the absolute Sovereign of the universe. This is why the New Testament presents the climax of history with Jesus’s royal titl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Revelation 19:16). And this is why the church’s confession has always been: “Jesus Christ is Lord.”

So when the world rages, when nations oppose His people, and when believers are hated or marginalized, we do not lose heart. The gospel does not depend on cultural approval, political stability, or our circumstances. The gospel rests on this immovable truth: “Our God reigns.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is the living God and the everlasting King.” One day, “every knee will bow…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Philippians 2:10–11).

Until that day, let’s live our lives with confidence, courage, and joy, not because we are strong, but because our King lives and reigns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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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부패한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약—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 l [Devotional] The Only Remedy to Corrupted People of God—True Knowledge of God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b%b6%80%ed%8c%a8%ed%95%9c-%ed%95%98%eb%82%98%eb%8b%98%ec%9d%98-%eb%b0%b1%ec%84%b1%ec%9d%84-%ed%9a%8c%eb%b3%b5%ec%8b%9c%ed%82%a4%eb%8a%94-%ec%9c%a0%ec%9d%bc%ed%95%9c-%ec%95%bd/ Thu, 13 Nov 2025 14:26:46 +0000 https://www.carysarang.org/?p=7125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버린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중심적이고 우상숭배로 기울어진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시는 단 하나의 참된 치료약을 처방하셨습니다. ****이 치료약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었습니다.

예레미야 9:23–24 (새번역) “나 주가 말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 24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을 때, 이스라엘은 이미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깊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붙잡았습니다. 정치적 세력, 군사력, 재물, 그리고 자기 생각과 감정—이 모든 것에는 의지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는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종교적인 언어를 쓰고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이 예배한다고 말하던 그 하나님을 실제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헛된 자랑과 거짓된 안전지대를 단숨에 깨뜨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자랑해야 할 것은 단 하나, 곧 나를 아는 것이다.” 여기서 “나를 아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신뢰하며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세 가지 성품을 강조하십니다.

  • 긍휼(언약적 사랑): 자기 백성을 절대로 놓지 않으시는 언약적 사랑
  • 공평(정의): 악과 죄를 반드시 바로잡으시는 거룩하신 성품
  • 공의(올바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완전히 선하다는 진리

세상이 혼란스럽고, 사람들의 마음이 부패하고, 소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 곧게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의 우상들은 힘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게 되면 세상을 향한 두려움 마음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을 기억하게 되면 방황하던 우리의 마음은 다시 주님께로 고정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진리를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끊임없이 우리를 흔드는 세상의 소리와 내면의 소음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 다시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성경이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생각과 기분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지혜, 능력, 성공, 재산을 자랑하며 살았던 마음의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가장 귀한 보물임을 다시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지 않으시고,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시며,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은혜로 다가가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셨고, 오늘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를 자신에게로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어떤 짐이 있든지, 어떤 죄책감이 있든지, 어떤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전히 초청하고 계십니다: “자랑하고 싶다면 너가 나를 아는 것에 대해 자랑하여라!”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이 부르심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2).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았고, 십자가의 공의에서 우리의 죄가 해결되었으며,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오늘 우리가 의롭게 되어 새로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까?


In Jeremiah’s days, Israel abandoned God and His Word because they listened to the voice of their own hearts. Yet even then, God did not abandon them. He graciously offered the only remedy for their self-centered and idolatrous hearts—the true knowledge of Himself.

Jeremiah 9:23–24 (ESV)

Thus says the Lord: “Let not the wise man boast in his wisdom, let not the mighty man boast in his might, let not the rich man boast in his riches, 24 but let him who boasts boast in this, that he understands and knows me, that I am the Lord who practices steadfast love, justice,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declares the Lord.

When God spoke these words through Jeremiah, Israel was already morally and spiritually devastated. They clung to everything except God—political power, military strength, wealth, and the shifting impulses of their own hearts. They still used religious language and still offered sacrifices, but the God they claimed to worship was a God they no longer truly knew.

So God shattered their empty boasts and false sources of security and spoke with piercing clarity: “There is only one thing you may boast in—knowing Me.” To “know” God is not about gathering more information about Him. It is an intimate, trust-filled understanding of who God is as He reveals Himself. In this passage, God highlights three key attributes:

  • Steadfast love—His covenant-faithfulness that never lets His people go.
  • Justice—His commitment to deal rightly with sin and evil.
  • Righteousness—His perfect, reliable goodness in all He does on earth.

In a world filled with confusion, corruption, and misplaced hopes, God invites His people to anchor their hearts in who He is. True knowledge of God reorders our desires, heals our anxieties, and restores our worship. When we know Him, idols lose their power. When we trust His character, fear loses its voice. When we remember His steadfast love, our hearts are drawn back from wandering.

So what does it mean for us today?

Our first step is to pause the relentless noise of the world and the noise within our own hearts and listen to God again. We must receive God as He reveals Himself in Scripture, instead of reshaping Him according to our preferences and emotions. We must repent of the pride that boasts in our own wisdom, strength, achievements, or possessions, and return to the precious treasure of all treasures—knowing God.

And here is our hope: God wants to be known. He does not hide from His people. He reveals His character, and He draws near to all who seek Him. When Israel wandered, God called them back; and when our hearts tremble or drift today, He calls us back in the very same way.

Whatever burden you carry today, whatever guilt troubles your heart, whatever fear weighs you down, God is still inviting you: “Let him who boasts boast in this, that he understands and knows me.” This invitation given through Jeremiah has been fully fulfilled in Jesus Christ (Hebrews 1:2). At the cross we behold God’s steadfast love; in Christ’s sacrifice His justice is satisfied; and through His resurrection we stand clothed in His perfect righteousness and walk in newness of life.

What, then, is the boast of your life? Is it the knowledge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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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5
[묵상] 이스라엘은 대체 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버렸는가? [Devotional] Why Did Israel Abandon God and His Word?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c%9d%b4%ec%8a%a4%eb%9d%bc%ec%97%98%ec%9d%80-%eb%8c%80%ec%b2%b4-%ec%99%9c-%ed%95%98%eb%82%98%eb%8b%98%ea%b3%bc-%ea%b7%b8%eb%b6%84%ec%9d%98-%eb%a7%90%ec%94%80%ec%9d%84-%eb%b2%84/ Tue, 11 Nov 2025 15:05:43 +0000 https://www.carysarang.org/?p=7121

우리는 지난 두 묵상을 통해 이스라엘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가장 큰 죄악을 저지르고, 그 결과로 그분의 말씀 또한 버렸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그들이 한때 사랑했던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게 만든 근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직접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예레미야 9:13–14 (새번역)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이 백성에게 나의 율법을 주면서 지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버리고, 나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았다. 14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고집대로 살고[=자기 자신의 마음을 따르고], 조상이 섬기라고 가르쳐 준 바알 신들을 따라다녔다.

모든 우상숭배의 뿌리에는 언제나 “자기 경배”(the worship of self)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숭배한 바알은 단순히 이방신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이 투영된 신이었습니다. 실제로 바알 숭배는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기복신앙과 타락한 성적 의식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알 신전에서 예배한 대상은 나무로 만든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우상숭배는 우상을 새기는 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생각이 더 지혜롭다고 여기거나, 하나님의 명령보다 우리의 감정을 더 신뢰할 때,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상 앞에 무릎 꿇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우리 자신의 욕망과 판단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 숭배는 결코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공허와 속박, 그리고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소망 없이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악한 마음의 고집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7). 그리고 이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옛 자아가 죽고 새 생명으로 살아나, 이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6:2–6).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의 왕좌에 앉아 다스리실 때,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욕망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아주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를 경배하게 하는 우리의 죄악된 마음에 귀를 기울리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의해 결정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순간 순간 바뀌는 우리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결정되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에 귀 기울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의 길을 따라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In the last two devotionals, we saw how Israel committed the greatest evil against God by forsaking Him and how their rejection of God led them to reject His Word. But why did they do it? What caused a people who once loved God to abandon Him so completely? The Lord Himself gives the answer:

Jeremiah 9:13–14 (ESV) “And the Lord says: ‘Because they have forsaken my law that I set before them, and have not obeyed my voice or walked in accord with it, but have stubbornly followed their own hearts and have gone after the Baals, as their fathers taught them.’”

At the root of every act of idolatry lies the worship of self. The Baal they worshiped was not merely a foreign god but a reflection of their own desires. In truth, Baal worship was a thoroughly human-centered religion, filled with selfish pursuit of prosperity and corrupt sexual rituals. The god they bowed before in the temple was not simply a wooden idol, but their own selves who refused to submit to God’s rule.

This is the essence of idolatry. It does not begin with the hands that carve an image but with the heart that exalts itself above God. When we believe our thoughts are wiser than God’s Word or our feelings more trustworthy than His commands, we are placing ourselves in God’s position. Even if we do not kneel before physical idols, we still bow before something closer: our own desires and judgments that we place above God. Yet such self-worship never brings freedom. It only leads to emptiness, bondage, and destruction.

But God did not abandon His people without hope. Through Jeremiah He promised a day when His people “shall no more stubbornly follow their own evil heart” (Jeremiah 3:17). That promise was fulfilled in Christ Jesus. Through His death and resurrection, our old self was put to death and raised to new life, so that we might receive a heart that delights in God rather than resists Him (Romans 6:2–6). When Christ takes the throne of our hearts, we are no longer slaves to our desires but people who live to follow the will of God.

Therefore, we must examine our hearts honestly. Whose voice are we listening to each day? Do we hear the quiet call of God that leads us to worship Him, or the deceitful voice of our own hearts that tempts us to worship ourselves? Are our choices shaped by the truth of God’s Word, or swayed by our changing emotions and desires?

I pray that today each of us would listen not to our own wisdom, but to the wisdom of God, and walk in His ways with a humble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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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1
[묵상] 하나님을 떠난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도 버린다 l [Devotional] The People Who Abandon God Also Reject His Word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d%95%98%eb%82%98%eb%8b%98%ec%9d%84-%eb%96%a0%eb%82%9c-%eb%b0%b1%ec%84%b1%ec%9d%80-%ed%95%98%eb%82%98%eb%8b%98%ec%9d%98-%eb%a7%90%ec%94%80%eb%8f%84-%eb%b2%84%eb%a6%b0%eb%8b%a4-l/ Thu, 06 Nov 2025 13:42:28 +0000 https://www.carysarang.org/?p=7113

예레미야 6:19 (개역개정)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그들의 꾀의 열매”]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지난 묵상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지른 가장 큰 죄악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더럽고 악취 나는 웅덩이 물과 같은 우상들에게서 만족을 얻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반드시 따라오는 또 다른 죄가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닫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외면한다는 것은 곧 그분의 음성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예배에 참석했고, 찬양을 부르며 기도했고, 제사와 헌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더 이상 그들의 심령을 감동시키지 못했고, 그들은 그 귀한 말씀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쇠퇴가 시작되는 과정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달콤하지도 않고 또 중요하게도 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은 다른 책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책으로 전락하고, 필요할 때 잠깐 펼쳐볼 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부담스럽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이런 영적 상태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자신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공허와 혼란, 그리고 파멸이 기다립니다. 예레미야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서 경험하게 되는 재앙은 결국 “스스로의 꾀의 열매”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 쇠퇴에서 벗어나는 길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4).

음식이 우리의 몸을 살리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립니다. 말씀을 멀리하면 마음은 약해지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갈 때, 그 자리에는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혹시 지금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친 영혼을 소생시키고, 참된 지혜를 주며, 그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에게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시킵니다(시편 19:7–9).

그러니 오늘 용기를 내어 성경을 펴십시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말씀하시기를 멈추신 적이 없으며, 지금도 성경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성경을 의무감으로 펴지 말고,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초청장으로 여기며 설레는 마음으로 폅시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이 책이 진리일 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이 바로 소망과 평화와 기쁨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Jeremiah 6:19 (ESV) “Hear, O earth; behold, I am bringing disaster upon this people, the fruit of their devices, because they have not paid attention to my words; and as for my law, they have rejected it.”

In the last devotional, we looked at the greatest sin Israel committed against God. What was it? They abandoned Him,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and sought satisfaction from filthy, stagnant cisterns—their idols. Yet when people turn away from God, another sin always follows: they stop listening to His Word. To ignore the living God is to ignore His voice. Israel still attended worship, sang hymns, prayed, and brought offerings. Outwardly, nothing seemed wrong. But inwardly, their hearts had drifted far from God. With their lips they confessed love for Him, yet in their hearts they treated Him with indifference. The truth of God’s Word no longer moved them—it passed through one ear and out the other.

This is how spiritual decline begins. Love for God fades first, and soon His Word no longer feels sweet or important. The Bible becomes just another book—something we skim when we need comfort but no longer submit to in obedience. And once we stop listening to God’s Word, we start listening to ourselves. Our thoughts become our guide, and that road leads only to emptiness, confusion, and ruin. As Jeremiah warned, the disaster that follows is “the fruit of their own devices.”

The Lord Jesus showed us the way out of such decline: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God’” (Matthew 4:4).

Just as food sustains the body, God’s Word sustains the soul. When we neglect it, our hearts grow weak and anxious. But when we return to His Word, we find that God has been waiting for us there all along.

Do you feel lost today? Does God seem far from you? Then return to the Bible, for returning to the Bible is returning to God. His Word revives the weary, gives true wisdom, and restores the joy that once filled your heart (Psalm 19:7–9).

So take courage and open your Bible today. God has never stopped speaking, and even now He is calling you through His Word. Do not open it out of duty, but with joy—as an invitation into His presence. When you open your heart and listen, you will discover that this Book is not only truth but your very life, because to listen to His Word is to walk with the God who is our hope, our peace, and our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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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3
[묵상]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지른 가장 큰 죄악 l [Devotional] The Greatest Evil Israel Committed against God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c%9d%b4%ec%8a%a4%eb%9d%bc%ec%97%98%ec%9d%b4-%ed%95%98%eb%82%98%eb%8b%98%ea%bb%98-%ec%a0%80%ec%a7%80%eb%a5%b8-%ea%b0%80%ec%9e%a5-%ed%81%b0-%ec%a3%84%ec%95%85-l-devotional-the-g/ Tue, 04 Nov 2025 13:52:08 +0000 https://www.carysarang.org/?p=7100

예레미야 2:11–13 (새번역) “비록 신이라 할 수 없는 그런 신을 섬겨도, 한 번 섬긴 신을 다른 신으로 바꾸는 민족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데도 내 백성은 그들의 영광을 전혀 쓸데 없는 것들과 바꾸어 버렸다. 하늘아, 이것을 보고, 너도 놀라고 떨다가, 새파랗게 질려 버려라. 나 주의 말이다.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 말씀을 하실 때, 그분의 마음에는 깊은 슬픔과 거룩한 분노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생수의 근원”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시키시고 복과 번영을 주시는 그 생수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더럽고 악취가 나는 물처럼 아무 생명도 줄 수 없는 우상들을 선택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를 강력하게 보여 줍니다. “생수의 근원”은 끊임없이 흐르고, 맑고, 시원한 물을 내는 샘을 가리킵니다. 이 샘은 인간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본인이십니다. 반면 “웅덩이”는 사람이 스스로 만든 인공 저장소에 불과합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쉽게 메마르고, 고인 물은 금세 썩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이 판 웅덩이는 금이 가 있어서 물을 전혀 담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 웅덩이들이 바로 우상을 상징합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며, 우리의 안전과 의미, 행복을 거기에 두려 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돌이나 금속으로 만든 형상일 수도 있지만, 돈, 성공, 관계, 쾌락, 편안함, 자아와 같은 것들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죄는 언제나 이렇게 속입니다. 만족을 약속하지만 결국 공허하게 만들고, 즐거움을 준다고 속이지만 끝내는 쓰라림을 남깁니다.

수백 년 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의 참된 성취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생수의 근원’)이 될 것이다” (요한복음 4:14).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생수의 근원”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버렸던 그 샘을, 예수님은 이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용서와 기쁨, 그리고 영생의 샘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생수이신 예수님께 등을 돌리는 것은,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가장 큰 죄악을 되풀이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영혼의 갈증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초청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요한복음 7:37).

오늘 우리도 다시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돌아가 우리의 갈증을 해소합시다. 그리스도 외의 어떤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려는 모든 시도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악이며, 결국 더 큰 공허와 쓰라림만 남길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의 샘물을 깊이 마시는 자는 그 안에서 참된 만족과 영원한 풍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영생과 참된 만족을 주는 “생수의 근원”과 더럽고 악취가 나는 “웅덩이의 물”중에서, 어느 것으로 목을 축이시겠습니까?


Jeremiah 2:11–13 (ESV) “Has a nation changed its gods, even though they are no gods? But my people have changed their glory for that which does not profit. Be appalled, O heavens, at this; be shocked, be utterly desolate, declares the Lord, for my people have committed two evils: they have forsaken me,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and hewed out cisterns for themselves, broken cisterns that can hold no water.”

When God spoke these words through Jeremiah, His heart was filled with both grief and righteous anger. Israel had not merely broken a rule; they had abandoned a relationship. The God who had rescued and loved them was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the source of all life and joy. To forsake Him was to cut themselves off from the spring that sustained their very being.

The image is powerful. A fountain of living waters is constantly flowing, clear, and refreshing. It represents God’s faithful presence that renews the soul. In contrast, a cistern is a man-made pit meant to store rainwater, often stagnant and dirty. Even worse, Israel’s cisterns were cracked, unable to hold any water at all. These cisterns symbolize idols—anything we trust, love, or pursue more than God in hopes of finding security, meaning, or happiness. Idols can be made of stone or metal, but they can also take the form of money, success, relationships, comfort, or self-reliance. This is what sin always does. It promises satisfaction but leaves us empty. It offers pleasure but delivers bitterness.

Centuries later, Jesus revealed Himself as the true fulfillment of what Jeremiah described. When He spoke to the Samaritan woman at the well, He said,

“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will never be thirsty again” (John 4:14).

In that moment, Jesus was declaring that He Himself is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What Israel had rejected, He now offered freely to all who would believe. Through His death and resurrection, He opened a never-ending spring of forgiveness, joy, and eternal life.

To turn from Him, then, is to repeat Israel’s greatest evil. But to come to Him in faith is to find the very life our souls were made for. The invitation still stands:

“If anyone thirsts,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John 7:37).

Let us return today to the fountain that never runs dry. Every attempt to fill our hearts apart from Christ will only leave us thirstier than before. But when we drink deeply of His grace, we discover that He alone is enough.

Before you are two choices: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that gives eternal life and true satisfaction, or the dirty, foul water of a broken cistern. Which will you drink from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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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새 언약 백성의 두 징표 l [Devotional] Two Marks of New Covenant People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c%83%88-%ec%96%b8%ec%95%bd-%eb%b0%b1%ec%84%b1%ec%9d%98-%eb%91%90-%ec%a7%95%ed%91%9c-l-two-marks-of-new-covenant-people/ Thu, 30 Oct 2025 13:18:52 +0000 https://www.carysarang.org/?p=7082

오늘의 묵상: 새 언약 백성의 두 징표—하나님의 영과 말씀

이사야 59:21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과 맺은 나의 언약은 이러하다. 너의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너의 입에 담긴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의 입과 너의 자손의 입과 또 그 자손의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약속하실 때,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으라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셔서 언약의 백성인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이 새언약은 인간의 의지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세워진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 속에서 “내가 친히 나의 영과 나의 말씀을 너희 안에 두겠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언약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신실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에 달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아름다움은 이 약속의 영원성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시 우리를 찾아오셨다가 떠나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친히 심겨주신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떠나시지 않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에 심겨주신 그 말씀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요한복음 14:26). 구약의 대언자들에게 임했던 동일한 성령께서 이제 모든 믿는 자 안에 거하시며,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이끄십니다.

새 언약 백성의 표는 자기 의지로 발현되는 자기 절제가 아니라, 참된 순종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말씀의 내주하심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신실하게 붙드시고, 우리 마음에 심긴 말씀이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새 언약 백성의 삶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지켜주시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보증하십니다. 그분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 계속될 것입니다.


Today’s Devotion: Two Marks of New Covenant People — God’s Spirit and Word

Isaiah 59:21 (ESV) “And as for me, this is my covenant with them,” says the Lord: “My Spirit that is upon you, and my words that I have put in your mouth, shall not depart out of your mouth, or out of the mouth of your offspring, or out of the mouth of your children’s offspring,” says the Lord, “from this time forth and forevermore.”

When God promises a new covenant, He does not call us to climb up to Him—He comes down to us. The covenant rests not on human strength but on divine grace. Notice how God Himself takes full responsibility: “My Spirit that is upon you … My words that I have put in your mouth … shall not depart.” Every verb emphasizes what He will do, not what we must achieve.

The beauty of this promise is its permanence. God does not merely visit His people for a season; He abides with them forever. “From this time forth and forevermore” declares that His Spirit and His Word will never be taken away. What began as a promise in Isaiah finds its full realization in Christ. Jesus said, “The Helper,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he will teach you all things and bring to your remembrance all that I have said to you” (John 14:26). The same Spirit who once rested upon the prophets now lives within every believer.

The mark of New Covenant people, then, is not self-discipline alone but the divine indwelling that empowers true obedience. The Spirit within us keeps us faithful, and the Word planted in us keeps us alive. God Himself guarantees that His saving work will continue in us and through us “from this time forth and forever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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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이스라엘은 왜 길을 잃었는가? | [Devotional] Why Did Israel Go Astray? https://www.carysarang.org/%eb%ac%b5%ec%83%81-%ec%9d%b4%ec%8a%a4%eb%9d%bc%ec%97%98%ec%9d%80-%ec%99%9c-%ea%b8%b8%ec%9d%84-%ec%9e%83%ec%97%88%eb%8a%94%ea%b0%80-devotional-why-did-israel-go-astray/ Tue, 28 Oct 2025 13:57:39 +0000 https://www.carysarang.org/?p=7061

이사야 59:1–15

이스라엘은 대체 왜 길을 잃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을까요? 이사야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성실[=진리]이 사라지니, 악에서 떠난 자가 오히려 약탈을 당합니다” (15절).

이스라엘 백성의 사회 안에 진리가 사라졌을 때, 정의와 공의가 뒤로 물러나고, 신실과 정직이 고꾸러졌습니다 (14절). 15절에서 “성실”로 번역된 단어는 단순한 정직함을 의미할 뿐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이 진리를 잃었을 때, 정의와 평화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기도했지만, 하나님께 들어올린 그들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3절),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의를 구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법정에서 밥먹듯이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 (4절).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약해지셨거나, 침묵하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손은 여전히 강했고, 그들을 구원하실 능력은 충분하셨습니다 (1절). 진짜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진리 자체를 버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진리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의로운 사람들조차 고통받습니다. 이사야는 악에서 떠난 자가 오히려 공격받아 약탈을 당하는 세상을 그립니다 (15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보고, 부패를 거절하면 오히려 고립되는 현실입니다. 진리가 사라지면 정의는 이익에 밀려나고, 거짓이 생존의 방식이 됩니다. 사람들은 속지 않기 위해 먼저 속이고,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이용합니다. 결국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가장 큰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신의 백성에게 진리 위에 굳게 서라고 부르십니다. 아무리 대가가 크더라도 진리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무너지면 공의와 의, 그리고 평화도 함께 무너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때, 그 말씀은 우리의 죄를 드러낼 뿐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소생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의 잘못을 비추어 보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굳게 세우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스라엘처럼 길을 잃어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진리, 곧 그분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Isaiah 59:1–15

Why did Israel go astray? Isaiah gives a simple but piercing answer:

“Truth is lacking, and he who departs from evil makes himself a prey.” (v. 15)

When truth fell in the public square, justice was pushed aside, and righteousness stood far away (v. 14). The absence of truth did not only corrupt the nation’s institutions; it also poisoned everyday life. People still prayed, but their hands were covered with blood (v. 3). They still sought justice, but their courts were filled with lies (v. 4). Outwardly they looked religious, yet their hearts no longer sought God. The problem was never that God had grown weak or silent. His hand was still strong to save (v. 1). The real problem was that His people had turned away from the truth that once bound them to Him.

When truth disappears from a society, even the righteous become victims. Isaiah paints a grim picture of a world where anyone who turns from evil becomes a target (v. 15). To live with integrity was to invite trouble. To refuse corruption was to stand alone. Where truth is missing, self-interest replaces justice, and deceit becomes the rule of survival. People harm one another before being harmed themselves. In such a world, those who seek to do what is right often suffer the most.

Yet God’s message through Isaiah still calls His people to stand firm. Truth must be restored, no matter the cost. When truth collapses, everything else collapses with it—justice, righteousness, and peace. But when we return to God’s Word and let it shape our hearts again, that same truth exposes our sin and brings renewal. Jesus prayed to the Father, “Sanctify them in the truth; your word is truth” (John 17:17). God’s Word not only reveals what is wrong in us but also makes us holy, setting us apart for Him.

How can we, then, keep ourselves from going astray like Israel did? By clinging to His truth, that is, His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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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의 편지 l Shepherd’s Letters https://www.carysarang.org/%eb%aa%a9%ec%82%ac%ec%9d%98-%ed%8e%b8%ec%a7%80-l-shepherds-letters/ Tue, 28 Oct 2025 13:42:52 +0000 https://www.carysarang.org/?p=7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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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4:8–9 (개역개정)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직역, “직접 입으로 맛보고 눈으로 바라 보아라"]. 그에게 피하는 자[=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두려워]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다윗은 이 두 구절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지식적으로 알 뿐 아니라, 직접 “입으로 맛보고, 눈으로 바라보라”고 초청합니다. 이 초청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몸의 오감을 통해 깊이 경험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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